. 내가 저걸 해낼 수 있을까 고민했을 정도로 몸 쓰고 춤추는 건 못 한다. 스스로 어색하고 자신도 없다. <스타 골든벨>도 그런 경운데 '벨' 라인 뒤에서 수다 떠는 거라 그나마 힘들지 않게 하고 있다. 몸 쓰는 거 빼면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저급한 이미지가 있어서 어지간한 연예인 같으면 이미지 때문에 출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소송> 같은 프로그램에도 편하게 잘 나간다.
허남웅 기자 성에 관한 거침없는 언사 때문인지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소송>은 개중에 가장 편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구라 맞다. 공영방송에서 풀지 못하는 얘기를 한다는 점에서 재밌고 또 우리끼리 얘기하는 성에 대한 이야기고, 또 내가 결혼한 몸이라 편하게 방송한다. 처음 녹화하고 나서 괜찮겠다, 좋은 프로그램 되겠다는 느낌이 오더라. 편하니까 공중파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케이블에서 푸는 느낌도 있다.
허남웅 기자 갑자기 김구라를 찾는 프로그램이 많아진 건 왜일까?
김구라 경우가 다르긴 한데 데뷔 때부터 심현섭이라는 친구를 알고 있었다. 그때도 이 친구는 ‘사바나의 아침’을 했었고 지금도 그런 유의 개그를 하고 있다. 그렇게 활동하다가 대중이 어느 날 열광했고 또 그러다가 인기가 사그라진 거다. 지금은 시대가 나하고 맞아서 대중들이 찾아주는 거고 그러다가 트렌드가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트렌드에 맞춘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다. 난 멘트를 세게 하는 편인데 예전 딴지일보에서 <시사대담> 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공중파는 의식적으로 수위를 낮추거나 좀 더 공부를 해서 덧입히는 작업을 할 뿐이다.
허남웅 기자 당신은 연출하는 개그맨이 아니라 애드리브에 강한 개그맨이라서 트렌드의 영향을 받을 것 같다.
김구라 내 생각도 그렇다. 단적으로 내가 유행어를 미는 개그맨은 아니지 않나. 나를, 그리고 내 생활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너는 오래 갈 거라는 얘기도 듣는다.
허남웅 기자 애드리브가 강점이고 건전한 '불량아빠클럽'에서 불건전한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소송>까지 영역에 한계가 없다는 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김구라 롤모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예전엔 미국의 디스크자키 ‘하워드 스턴(Howard Stern)’이라고 했다. 방송할 때 스타들의 치부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거침없음으로 유명한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허참, 임성훈, 조형기, 이경규 선배처럼 이 바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그레이드를 상승시켜 오랫동안 방송하는 게 목표다. 성이나 시사 등 남들이 꺼리는 방면에 능력이 있으니 이를 무기로 계속 유지하고 싶다.
허남웅 기자 예전엔 남자 팬들이 압도적이었는데 지금은 여자 팬도 많아지지 않았나?
김구라 그렇다.
허남웅 기자 여자 팬이 많아진 건 순전히 (김)동현이 때문이 아닌가. 아들의 귀여운 이미지가 당신의 거친 이미지를 상쇄시켜준 것 같다.
김구라 인정한다. 그전까지 시청자들이 나를 봤을 때 저 인간은 멘트도 저질이고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거 같다고 했다. 동현이와 함께 나오면서 그런 시선이 많이 변했다. 동현이가 나와 달리 귀엽게 생겼고 아이의 순수한 이미지를 좋아하는 여자 팬들에게 간접적으로 어필한 부분이 있다. 우리 아들이지만 고맙게 생각한다.
허남웅 기자 예전엔 누가 물어보지 않으면 굳이 결혼했다는 사실 밝히려고 하지 않았다.
김구라 그랬다. 방송국에 애 데리고 나가고 가족 공개하는 거 보면서 저 연예인들은 뭐야, 왜 가족 얘기를 방송에서 하고 그래, 라고 반응했다. 나는 동현이가 알려지기 전까지 가족 얘기를 절대 안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더라. 그걸로 인해 내가 득을 보고 있으니. 세상일이란 참 모르는 거구나라고 많이 느낀다. 지금도 집 얘기, 가족 얘기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하지만 대중들이 좋아하고 나에게 득이 되는 점도 많고, 먹고 살려니까 많이 하고 있다.
허남웅 기자 ‘김구라’라는 예명은 어떻게 지었나?
김구라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곳에서 인터넷 방송할 때 패러디가 굉장히 인기였다. 내 이름이 김현동인데 그냥 쓰기에 밋밋했다. 아시다시피 내가 구라가 강하니까, 그땐 지금보다 구라가 더 강했다. 주변에서도 인정해주는 구라였다. 그러면 이름을 ‘구라’라고 하자, 해서 김구라가 됐다.
허남웅 기자 그 이름이 공중파에서 활동하면서 문제가 되지는 않았나? 인터넷 방송 시절 파트너였던 황봉알은 그 때문에 이름을 황봉으로 바꾸지 않았나?
김구라 황봉알이란 이름이 김구라보다는 거부감이 강하다. '도친개친'이지만. 처음 공중파 라디오 방송할 때 친한 PD가 구라라는 이름을 쓰는 건 좀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내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최유라 씨 같은 경우 이름 부르는 걸 힘들어했다. <그랑프리쇼 여러분> 할 때도 이경규 선배가 이름 바꾸라고, 싸구려 같다고 해서 고민을 좀 했다. 그래서 딱 한 번 ‘구라현동’이라고 바꾼 적이 있다. <그랑프리쇼 여러분>은 내게 기회였고 더군다나 이 프로그램의 처음 컨셉이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거였다. 근데 그렇게 바꾼 것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김구라로 밀고 갔다. 다행히 지금은 공중파 위주로 영역을 확대해나가니까 이름 가지고 뭐라는 사람은 없다.
허남웅 기자 사실 당신의 매력은 싸구려 감성에 있지 않나?
김구라 그렇다. 그럼 ‘빽가’라는 이름은 뭐야. 김C도 처음엔 이름 이상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잘하지 않나.
허남웅 기자 공중파 방송 초창기에는 이름뿐 아니라 인터넷 방송 시절 인기 연예인들을 소재로 했던 독설로 곤란했던 경우가 있었다고 들었다.
김구라 껄끄러운 일은 끊임없이 존재한다. 공중파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아주 거셌다. 라디오 방송할 때 내가 DJ라서 안 나오겠다고 한 연예인도 있었다. 지금도 곤란한 상황이 있다. 일전에 윤종신 성희롱 발언했을 때, 나와는 상관도 없는 일인데 모 인터넷 신문에서 내 전력을 들어 같이 묶은 것도 그렇고. 아무튼 그건 어차피 내가 저지른 행동이기 때문에 계속 가져갈 수밖에 없다. 그게 당연한 거고. 물론 방송을 계속하면 강도는 낮아질 거라 생각한다.
허남웅 기자 그런 기사를 보면 항의하나?
김구라 그냥 놔둔다. 기사를 보니까 그 기자는 항의하면 더 그럴 사람이더라. 난 사실 기자들을 좋아한다. 아는 게 많고 유식한 사람들이라서 좋아하는데 개중에는 안 그런 사람도 있다. 사실 그 문제의 기자분도 전화했는데 안 받았다.
허남웅 기자 공중파 방송 기회를 잡았을 때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가 높지 않았나?
김구라 난 계속 업그레이드를 한 경우다. 인터넷에서 케이블로, 케이블에서 공중파 라디오로, 그리고 지금은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방송한다. 아직도 절박한 심정이 있긴 한데 2004년만 하더라도 정말 힘들었다. 공중파 라디오로 넘어오면서 ETN, 국군방송 하던 거 여러 가지를 접었다. 그때는 방송 이것저것 많이 하면서 돈도 많이 벌던 시긴데 공중파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다 접은 거다. 어떻게 해서라도 최소 6개월은 기본이고 2년 이상은 한 다음에 잘려도 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PD가 요구하는 게 많아 스트레스 받고 많이 힘들기도 했다.
허남웅 기자 꿈은 팝 음악 방송 DJ 아닌가.
김구라 팝이 요즘에는 가요 때문에 경쟁력이 없지 않나. 쉽게 챙겨들을 만한 채널도, 시간도 없다. 물론 지금도 팝 음악을 좋아한다. 내 방송에서 팝 틀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청취자 성격과 맞지 않아 아쉽지만 그렇게 못 하고 있다. 아무튼 팝에 대한 동경, 그리움이 있다.
허남웅 기자 사람들에게 김구라가 팝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은 의외일 거다. (웃음) 글을 쓰는 것도 의외다. 저서도 두 권이나 있고.
김구라 글쓰기에 재미를 느끼는 건 아니다. 개그맨은 대본을 자기가 직접 작성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글을 쓸 줄 아는데 당시 팝 칼럼에 관심이 많아서 ‘GMV’라는 음악잡지에 ‘개그와 팝이 만날 때’라는 기획안을 넣었다. 당시 편집장이던 원용민 씨가 재미있다고 받아들여서 1년 정도 칼럼을 연재했다.
허남웅 기자 개그와 팝이 만났을 때?
김구라 예전에 워너에서 컴필레이션 음반을 기획한 적이 있다. 그만큼 팝을 좋아했는데 그때 남희석이 진행하는 <비교체험 극과 극>이라는 TV 코미디 프로 인기가 굉장했다. 그걸 패러디했다. ‘음악 비교체험 극과 극’이라고. 미성과 허스키의 만남이라고 해서 시카고의 피터 세테라와 로드 스튜어트를 비교했다. 또 음악계의 철새들이라고 아시아에서 베이스 치고 유라이어 힙에도 있었던 존 웨튼에 대해서도 쓰고.
허남웅 기자 잡지에 글을 쓸 정도면 보통 재주는 아니다.
김구라 아니다. 글 쓰는 사람은 글을 쭉쭉쭉 빨리 써야 하는데 나는 쭉쭉쭉을 못 한다. 글 쓰는 걸 즐기지는 않는다. 재능도 없고.
허남웅 기자 조선일보에 ‘김구라의 쿨아이 칼럼’이라는 기사를 정기적으로 기고한다. 예전 딴지일보에서 활약하던 사람이 반대편으로 간 격 아닌가?
김구라 처음부터 팬들 사이에 그런 얘기가 있었다. 내가 더 크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큰 의미는 부여하지 않는다. 정치인으로 치면 김문수, 이재오 의원들이 민중당에 있다가 지금은 한나라당으로 옮기지 않았나. 정치인도 대중하고 호흡하기 위해 그러는 건데, 똑같다. 조선일보에서 먼저 콜이 왔다. 딴지일보에서 2005년 1월까지 <시사대담>을 방송했는데 한 달 있다가 바로 제안이 오더라. 지금 같았으면 고민 없이 바로 했을 텐데 당시에는 딴지일보의 색깔도 있었고 주변에서 만류도 하고 라디오 방송 신경 쓰느라 여력도 없었다. 내 생각도 지금하곤 달라서 처음엔 아닌 거 같아 거절했다.
허남웅 기자 그 뒤에 승낙한 이유는 뭔가?
김구라 다시 연락을 해오더라. 그래서 수락했다. 내가 조선일보에서 글을 쓴다고 조선일보 이념에 영향을 받을 것도 아니고 거기서 내 글에 터치도 전혀 안 한다. 글을 쓰려면 많은 사람들이 보는 데다 글을 써야 할 것 아닌가. 예를 들면 배한성 씨 같은 분은 길을 가다가 나를 보더니 조선일보 잘 보고 있다 그러시는데 거기에 글 안 썼으면 그런 분들이 나를 알기나 하겠는가. 그런 게 매체 파워라는 걸 느낀다.
허남웅 기자 파트너로 함께 이름을 날리던 황봉알과 노숙자는 어떻게 지내나?
김구라 지금은 서로 소홀하다. 팬들도 왜 소홀하게 지내느냐고 해서 부담스러운 게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하고 이제 안 친하다. 황봉알은 나랑 동갑인데 SBS 개그맨 2년 후배다. 성격도 굉장히 다르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그분은 싫어하고, 그는 가정적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 일적으로 호흡이 맞아서 같이 온 거다. SBS 개그맨 시절에도 거의 말을 안 했다. 우연히 일이 맞게 돼서 같이 하게 된 거고. 지금처럼 함께하는 일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사실 당시에도 일이 끝나면 따로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다. 황봉알, 노숙자,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만 술을 마신 적이 없다.
허남웅 기자 셋이 함께 하던 프로를 즐겨 보고 듣던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관계가 의외로 느껴질 것이다.
김구라 그 뒤에 나 혼자만 방송 출연하니까 팬들 중에 배신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비틀즈도 존 레논 좋아하는 사람 있고 폴 매카트니 좋아하는 사람 있듯이 김구라 좋아하는 사람, 황봉알 좋아하는 사람, 노숙자 좋아하는 사람이 다르다. 내 팬들은 나를 이해하는데 황봉알 씨나 노숙자 씨 팬 중에, 한참 같이 하다가 자기만 빠져나와서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나와 그 친구들은 목표가 달랐다. 나는 계속해서 팝 음악 방송 DJ가 꿈이었던 사람이라 인터넷 방송 시절에도 계속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가는 길이 다르다. 그 친구들은 여전히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다.
허남웅 기자 친하지 않은 사람과 일로써 호흡이 그렇게 잘 맞을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김구라 일적인 면에서는 안 친한 게 낫다. 그래야 오래 갈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유리상자 이런 팀만 보더라도 박승화와 이세준 둘은 취미가 다르다. 박승화 씨는 술 좋아하고 이세준 씨는 조용히 책 보는 거 좋아한다. 그 친구들도 사석에서 한 번도 술 마신 적 없다고 하더라. 그런 관계가 오히려 낫다. 예전에 친구 염경환과 듀오를 했다. 친구니까 일 끝나면 술 마시고 그랬다. 그런데, 그러면서 트러블이 생긴다. 일과 놀이가 같이 가면 금상첨환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프로필 1970년 생 | 인하대학교 영어영문학 졸업 | KBS <스타 골든벨>,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동안클럽’,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tvN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소송> | 저서 <구라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웃겨야 성공한다>
사진 김진희
허남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