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시가체에 머물렀다. 목없는 채로 정좌한 양들이 인상적이었다. 사진은 많이 찍었지만 너무 잔인한(?) 사진은 심의에 걸리지 않을까 싶어서 하나만 실었다.
아침에 일어나 타실훈포 사원 무료입장(ㅡㅡ;)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잠시 전의를 다진 후, 점심때는 코라(사원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를 한 바퀴 돌며 기회를 엿보았지만 역시 실패했다. 팀원들과 돈을 내고 들어가느냐 그냥 포기하느냐 말이 있었지만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사원을 몇 번 보다보면 그 사원이 다 그 사원이다.) 인터넷을 하고 우리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시가체 관광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티베트의 낮은 정말 길었다. 동지임에도 7시가 넘어야지 해가 서산 넘어로 지기 시작했다.
겨울인데다 건조한 기후 탓에 고기의 보존상태가 좋다. 장날인지 많은 고기들이 있었다.
시가체에 짓고 있는 '짝퉁 포탈라궁'
녹색의 묵과 비슷한 음식을 팔고 있다.
타실훈포 주위의 경관 이 곳 사람들은 야외에서 당구를 많이 즐긴다.
타실훈포 주위의 마니차 모습. 공짜 입장을 위해서 한 바퀴 돌았다.
야크의 머리인 듯 타실훈포 코라를 도는 중 보았다.
2006년 12월 20일 수요일
3일째 : 시가체 -> 라체 -> 팅그리
10시에 시가체를 출발하여 12시경에 라체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운전수인 로산을 꼬셔서 라체 근체에 있는 온천을 향하게 되었다. 여행책인 '세계를 간다'의 원본은 일본책인데 그 책 안에 라체 근처의 온천 정보가 실려있었다. 그것을 보고 찾아간 온천인데 시설은 판자집에 티베트 현지인 수준이었다. 게다가 혼욕이었다. ( 입장료 : 25위안 비싸다 ㅡ,ㅡ;;) (덕분에 티베인인 여성의 가슴도 봤다. 할머니였지만 ㅡㅡ;) 근데, 같은 동료였던 '야스'라는 사람이 갑자기 온천에서 올라오는 도중에 주저앉는 것이었다. 40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갑자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다가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이다. 이 야스상은 회복하는데 1주일이 넘게 걸렸다. 내일이 (21일)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올라가는 날인데 괜찮으려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다.
어쨌든 야스씨를 태워서 팅그리라는 곳에 왔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었고 해는 길고 해서 짜이(밀크티, 인도의 짜이와는 다르다.)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야크털에 염색한 것을 말리는 중. 이런 털로 짠 스웨터라면 선물로써 최고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말리고 있는 야크털
멀리 에베레스트가 보인다.
01
티베트의 아이들 애들은 역시 귀엽다.
일본인 사진사인 '카이유키'상 나와 동갑이다.
티베트 칼국수 요리인 뚝바
팅그리의 주민
짜이(밀크티)를 마시며 소일하던 팅그리의 찻집. 이 사진과 같은 빛은 상업적으로 써먹지 못하는 빛이라고 했다.
21세기에 에베레스트를 오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아직까지도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모험임에는 분명하다. 지금껏 2000여명이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올랐다고 하고, 200여명은 에베레스트에 자신의 몸을 바쳐야했다. 단순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대략 보기 편하게 10%의 사람이 이 도전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해보자. 무엇인가를 해서 10% 이상의 사망 확률을 가지는 것이 무엇일까? 결투나, 러시안 룰렛, 그리고 전쟁 등, 몇 가지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처럼 많은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모험임에는 분명하지만 전설적인 셰르파인 텐징노르가이가 힐러리경이 에베레스트를 올랐을 당시와는 많은 변화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위의 동영상에서도 나온 것처럼 요즘에는 에베레스트의 정상에서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는 이상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단다.
이제는 상업원정대라는 것이 발달하여 셰르파들이 등정대를 위해 사다리도 놓아주고 그들이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온갖 서포트를 다 해주고 있다. 돈만내면 정상에 올려준다는 시대라고 해야할까? 지금은 에베레스트에 자신의 의지와 다리로 오르는 사람과 돈으로 오르는 사람이 뒤섞여 있는 시대인 듯 하다. 또한 어설픈 상업원정대가 등정의 위험요소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