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중국 청두(성도)에 여행갔을 때, 잠시 신세를 졌던 민박집.

어여쁘신 누님과 히말라야의 꿈을 꾸시다가 <이곳도 히말라야의 끝자락이 아니던가...> 라며 그곳에 장기체류중이셨던 형님.

그들과 재밌는 추억을 쌓고 나는 내 갈 길을 가고...

오늘 네이버의 안 가는 카페를 지우다가 문득 누님의 카페에 들어갔다.
중국내부가 외부의 시선에 적대적일 때, (티베트 사태 이후) 공안들의 괴롭힘을 받고, 힘들어하시다가 민박을 접으셨다는 것까지의 사정만 알았다.

지우기에 아까운 추억이기에 남겨두기로 마음먹고 들어가서 글을 읽었다.

그런데 !!
민박집 누나와 히말라야를 꿈꾸시던 형님이 결혼을 하셔서 아들이 돌을 지났더란다.

서로 스쳐지나쳤을 수도 있을 인연이
이렇게 찡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만드는구나 !!!
늦게나마 알게 되었지만 축하드립니다.

결혼축하조공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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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티베트에서 만났던 나시족 출신의 여행가이드 소피아...
엽서에 동파문자인 이상한 그림으로 자기이름을 그려준 아이.
나중에 보니, 진짜 동파문자가 그렇게 생겼기에 진짜임을 알게되었다.

네가 나를 좋아했는지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정황상 그러했으리란 느낌만 있었을 뿐.

누군가는 내게 둘이 좋아보인다고 했다.
(여자의 시선으로 그녀가 내게 호감이 있는게 보였던걸까?)

너는 내가 네팔로 떠나는 날, 나머지 여행계획을 취소하고 쿤밍의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더랬지...
이것이 정황의 증거가 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비록 그때 중국비자가 5일 밖에 남지 않았기에 중국을 떠나야 하는 사정도 있었지만,
솔직히 나는 비겁했더란다.

소피아, 네가 조금만 예뻤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중국에 좀 더 오래 머물 방법, 쿤밍으로 갈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굳이 여행계획을 바꾸지 않았더랬다.

니가 나를 좋아했던 것이고, 내가 너에게 좀 더 호감을 느꼈더라면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문득 다른 추억이 머리를 스친다.

총카파 추모일에 조캉사원을 돌면서 나의 되지도 않는 영어를 칭찬해주고 내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해주었었지... 지금 생각해보니 같이 있어서 더욱 즐거웠던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인연은 없으리란 (슬픈)예감과, 형님 누나의 아름답고 샘나는 인연을 보면서, 인기와 상관없는 길을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걷고 있는 내게, 호감과 동감을 보여줬던 너와의 인연을 문득 생각해보게 되었다.

Still I'm your 꺼거. So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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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0일 월요일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묘~하면서 야릇한 느낌과 받으면서 일어났다. 바깥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모양이다. 잠에서 깨었을 때는 나만의 독방이었던 곳에 어떤 서양인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잠을 못 잤기 때문에 잠을 좀 자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난 이 남자에게 잘 자라고 하고 난 병마용으로 떠났다.

  시안 역 앞에서 306번이자 5번 버스(2개 번호가 같이 적혀있다.)를 타고 7위안을 내면 병마용까지 데려다준다. 그리고 어디서 내릴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디 간다는 뜻을 전달하면(말이 안 통하면 뜻이라도 전달하면 된다. 방법은 알아서~) 그곳에서 내리라고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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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용의 전경

  이렇게 보면 분명 웅장하기는 웅장해보인다. 그러나 군무를 추는 사람들 같다고 할까?
오히려 박물관에 따로 전시해 놓은 몇몇의 전시물이 더욱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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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용 2호갱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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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 도금이 된 진나라 시대의 검


   박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는 진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크롬 도금이 되어있는 칼이다. 2000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지금도 겹쳐놓은 종이 10장 이상을 가볍게 베어낼 수 있다고 한다.
  크롬 도금이 재현된 것은 20세기 초 독일에서였다나?

  진시황릉은 그냥 SKIP해버렸다. 발굴은 앞으로 몇 십년 안으로 힘들 것 같고, 발굴 안된 진시황릉은 단지 조금 거대한 인공적인 야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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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청지


  화청지는 당태종과 양귀비가 함께 여름을 나던 여름 별장이었다고 한다. 대충 둘러보는데 2시간 정도 걸리는데 어디를 보고 어떻게 느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한창 여자에게 빠져있는 졸부집의 별장에 초대받아 왔다고 생각해보면서 걷기로 했다. (졸부네 별장 치고는 지나치게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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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의 머리가 반들거리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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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당나라 시대의 복장을 하고서 기념사진을 많이 찍던 곳. 유명한 정자인 듯 함. 그러나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음.

 
 
  오늘은 이곳 두 군데를 보고서 다시 Ludao빈관으로 왔다. 방에 들어와보니 어떤 단발머리의 동양 여자애가 자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허우대가 큰 서양녀석이 와서 이 여자를 깨워 같이 나가는 것이었다.
  들은 얘기로는 여자는 중국 대학생이고 남자는 유럽의 어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여행중에 만나서 같이 여행중이라고 했다.  이런 부러운 것들~~~

요약 : 시안의 병마용과 화청지를 보고 옴.


2006년 11월 2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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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사 주변의 시장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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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과일들이 즐비한 시장


 

   아침에 일찍 일어나 청두행 열차표를 끊었다. 루안워 가격이 다른 열차의 잉워와 비슷하여 이것도 경험이다 싶어서 루안워를 끊었다. 시안->청두 루안워가 186위안이었다.
   오늘의 일정은,
    숙소 -> 청진사와 주변 -> 비림박물관 -> 숙소 였다.

   청진사와 그 주변 : 청진사 주위의 거리가 가장 좋았다. 청진사도 들어가봤지만 그냥 옵션 정도였다. 그 옆의 말린 과일 시장도 좋았는데 맛만 보고 안 샀더니 주인 아줌마가 인상을 팍 쓰는 거였다. 조금만 더 알짱거리다간 요즘 말하는 "손님, 맞을래요?"가 될 것 같아서 얼른 피했다.

   비림 박물관(Stone Tablet) : 한국인과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있어서 가이드의 설명을 띄엄띄엄 주워들었다. 왕희지니 누구니 열심히 설명하는데 그닥 관심이 없으니 설렁설렁 둘러보고 나왔다.
이곳도 청진사와 비슷하게 그 주변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많은 서예가와 화가, 초상화가들이 있었고, 그들만의 공간을 형성한듯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어디와 비슷할까?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보여서 봤더니 10위안을 받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였다. 모델은 80은 넘어보이는 할머니셨는데 그 표정이 너무 온화해보였다. 다 그린 초상화를 바라보던 그 담담하며 온화한 미소를 무엇에 비유해야 할까?
   그 할머니는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계셨을까?

   6시경에 너무 힘들어서 택시를 타고 숙소를 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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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8일



  아침 7시 30분경,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받으면서 일어났다. 열차시간은 8시 40분경이었고 청도역까지는 걸어서 5분이었기 때문에 여유있게 기차를 탔다. 그렇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는 짐을 넣을 공간이 없어서 그곳에 있던 할머니와 적당히 쇼부를 보고 내 배낭을 침대칸 아래에 쑤셔넣었다.

  내가 탄 열차는 침대칸이 세 개씩 있는 '잉워'라고 부르는 기차였다. 출발하고 얼마정도 지났을까? 부부끼리 왔던 조금 비대한 아저씨가 "Can you speak English?" 라고 물어본다. 해서 "Yes, Just a little"이라고 했더니 이 아저씨 갑자기 조용해진다. 담배 한 대 꼬나물고 라이터 뒷주머니에 꼽고 차량 사이로 갔다. 담배를 몇 모금 빨고 있으니 이 아저씨가 갑자기 아는체... 손짓, 발짓, 나보다도 안되는 영어를 써가며 나에게 하고싶었던 얘기인 즉슨, 부부끼리 마주보는 자리가 필요하니까 자리를 바꾸자는 거였다.
"혼잔데 뭐 어려울 것 있겠어."싶어 선뜻 바꿔줬다.

  그런데 인도를 여행하면서도 현지인 중에서 자리를 바꿔달라는 사람이 종종 있었는데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자기 편할때만 바꿔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자리를 바꿔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을 뿐더러, 어처구니가 하늘을 찌르는 요구 정도로 생각하고 무시해버린다.

  때문에 여행중에 누군가가 자리를 바꿔달라는 요구에 대해,
 < 바꿔 줄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은 내 몸을 불편하게 해서 자기 몸 하나 편하려는 의도밖에 없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날은 벙어리처럼 조용히 보냈다. 담배 한 모금 빨고 바깥 구경 하고, 담배 한 모금 빨고 멍하니 있다가 9시 30분경 불을 꺼주자 그때서야 잠들었다.


2006년 11월 19일

  새벽 5시경에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잠에서 깨었다. 여행을 떠나서 3일째 언제나 묘한 기분에 잠을 깨게되었다.

 그 '묘한' 기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평상시 내가 깨어났던 곳과 깨어난 곳이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몸의 반응이 아니었나 싶다.
 군대에 처음 입대해서 기상 팡파레와 함께 느꼈던 그 느낌이 아니었을까? 내가 오고자 원했기에 왔던 여행이 군대에서의 느낌과 비슷하다니 참 이상했다. 아마도 내가 일상생활이 아닌  다른 상태에 있었음을 뇌가 나의 몸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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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시안역 (스모그가 장난 아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기차에서 내렸다. 뿌연 스모그가 나를 반겼다. 어디에 묵을지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스모그 낀 거리를 이리저리 아무생각 없이 헤메다가 가이드북을 꺼내서 Ludao 빈관이라는 곳을 정한 후 그곳으로 갔다.

  지나는 길에 호떡을 파는 집이 있길래 하나 사먹었다. 아무것도 안 들어 있는 밀가루 빵을 반으러 가른 후 안에다 다진 닭고기를 넣어주는 것이었다. 1.5위안(180원).

  호떡을 고무줄 씹듯 질겅질겅 씹으면서 Ludao빈관이란 곳을 찾아 들어갔다. 1박에 45위안이란다. 깎을려고 했는데 서양인 상대로 장사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잘 안 깎아준다. 4인 도미토리 룸을 이날은 나 혼자 사용했다.




종루에서 바라본 시안 시내의 모습

  오전에 낮잠을 자고 오후에 시안 시내를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위의 동영상은 이날 종루라는 곳에서 찍은 것이다. 종루가 지니는 역사적 의미 따위는 전혀 알 수가 없었고 대신 중국의 공해 문제를 눈이 시리도록 느낄 수 있었다.
Posted by 마린 (MA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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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본 풍경 (인천항을 떠나려고 한다)

2006년 11월 16일 목요일 중국 청도로 출발

   전날 밤을 샜다. 새벽 2~3까지는 때려잡아도 잠을 못 이루는 야행성인데다가 야행성의 특징상 아침에는 무지 약하다. 그런데 부모님에게는 인사를 드리고 가야 할 것 같아서 사용한 극약처방(?)이었다. 잠을 안 자기 위해 머그컵에 커피믹스 3개를 털어넣어서 아이스 커피를 만들어 마시면서 쓰린 곳을 달랬다. 언제나 느끼지만 밤샘과 커피는 쓰린 속에 쥐약이다.

  그런데 생각해봤더니 막상 도착할 청도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안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한국인 민박정보를 적당히 찾은 후, 적절한 타이밍에 인천 제2여객항으로 향했다.

  배 안에서는 6천원짜리 저녁을 먹은 후 잔돈을 뒤져보니 달랑 7천원이 남아있다. 한국에 돌아갈 때 리무진 버스 타고 집에 못간다는 위기감(?)이 내 가슴을 조여왔다. 밤 12시를 넘어서 배 밖으로 나가서 '별이 빛나는 밤'을 기대했다. '망망대해의 배 한척'의 이미지를 상상했었더랬다. 그러나 이는 나의 착각일 뿐 수평선 여기저기에서 별 대신 다른 배들의 등불이 열라 밝게 비치고 있었다. 'Starry Night'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고서 선실에 들어가 디비져잤다.

요약 : 날밤 새고 인천 국제여객항으로 출발. 드디어 중국으로 여행을 떠남.


2006년 11월 17일 금요일 중국 청도에 도착
 
   새벽 3시경에 일어났다. 몇 시간 정도 잠을 잤더니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라는 책에서 보면 그 남작 아저씨는 3개월 잠을 자고 3개월을 깨어 있는 묘기를 보여주던데 나 같은 범인(凡人)은 그런 묘기가 안되나보다. 그냥 밤이 새고 배가 중국 칭다오 항에에 도착하길 기다렸다.
   배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니 나를 반겨주는 호객꾼이 있었다. 한 20~30m 정도 쫒아온 것 같은데 나중에 인도와 비교해보면 이 아저씨는 아주 귀여운 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청도에는 별다른 용무가 없었다. 그냥 시안까지 가기 위한 코스에 지나지 않았다. 시안 가는 기차표를 사고 잘 곳만 정하면 이 날의 할 일은 전부 끝난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표는 쉽게 구했지만 잘 곳이 만만치 않았다. 어제 준비해갔던 한국인 민박에 전화를 걸어보니 전부 만원이란다. 2002년도에 스쿠터를 타고 일본을 여행했는데, 그 때는 한달 간 여행하면서 딱 3일만 돈을 내고 지붕있는 데에서 잠을 잤다. 그러나 여기는 일본이 아니다. '노숙하고 잠에서 깨어보니 염라대왕과 면담을 하고 있더라'는 시츄에이션도 가능한 곳이다. 나중에는 급해져서 "저, 거실에서 자도 되는데요, 그냥 하루만 자면 안될까요? 디스카운트 안 할게요" 라고 말 할 뻔 했다. 하지만 숨을 고르고 주변을 돌아보니 주변에는 전부 '빈관'이라고 하는 여관 투성이었다. 그래서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서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중국TV에서는 어떤 걸 하나 이리저리 리모컨을 돌리면서 시간을 때웠다.

요약 : 방을 못 구해서 첫날부터 삽질함. 앞으로의 여행도 험난할 걸로 예상됨.

Posted by 마린 (MA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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