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여행의 인연과 악연

마린 (MARLIN) 2009. 11. 18. 02:54
* 먼저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이 글을 쓰게 했던 그 '사내'가 이 글을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서 쓴다는 사실을 밝힌다.
또한 그런 뎐챠로 이 글은 배설의 성격이 아~~주 강하다는 것 또한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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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내 성격이 모나고 여행 경력이 미천하기 때문인지 그 인연이 길게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여행 중 가장 길었던 인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음달에 서울에 올라가니 술 한 번 쏘라는 것이다. 부족한 나에게도 인연의 가닥은 남아 있었나보다.

악연 : 여행을 통해 다시 만나기 싫은 악연을 맺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여행 중 성격이 안 맞아서 대판 싸우거나 해서 헤어지는 경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면 여행을 다 마치고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져가는 누군가가 갑자기 여행의 악연으로 등장하는 것은 경우는 도대체 어떠한 시츄에이션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는 어제 새벽, 웃기지도 않는 이유로 생각지도 않던 여행의 악연을 갖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동행 : 여행을 하면 종종 동행을 만나게 된다. 난 중국의 청두에서 첫번째 동행을 만났었다. K라고 하자. 나보다 한 살 어린 여자였었는데 약간 호감이 생겼었다. K와 함께 청두에서 아미산과 러산대불을 보고 함께 티베트까지 갔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여자의 심리를 모른다. 게다가 서로 여행의 초보다. K는 중국어를 하는데 나는 '워아이니'가 알고 있는 유일한 중국어였다. 나는 K에게 매력없고 도움 안되는 동행 정도로 인식되는 듯 했고, 그래서 나도 적당히 생각을 접었었다. 그렇게 단순한 동행으로써 티베트까지 갔다.

도미토리 : 도미토리는 여행자가 값싸게 묵어 수 있는 숙소의 형태다. 보통 6~8명이 한 방에서 자기 때문에 가격이 싼 편이다. 티베트 라싸에서 여행의 내공이 있어 보이는 한국인을 만났었고, 그를 통해 값싸고 좋은 숙소를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을 C라고 하자.

C는 신경이 예민했나보다. C와 K 내가 함께 잤던 도미토리 숙소에서 다음날 나는 나와야했다.
내가 코를 골아서 전날 잠을 못잤다는 것이다. 나는 미안하다고 했고, 그 날 다른 방으로 옮겨야했다.

티베트에 있는 도중에 C는 K에게 인도로 함께 가자고 권유했고, 결국 K는 인도행을 결심했다. C가 인도 유경험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음, 나도 인도행을 결정했었다. 하지만 C와 K와는 함께 가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어딜 가더라도 C와 나는 같은 방을 쓸 수 가 없고, 셋 모두 싱글룸에서 자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K도 코를 골지 않았기에 함께 여행을 한다면 여행 내내 나는 싱글룸이나 다른 도미토리를 써야할 것이다. 그리고 C와 K는 도미토리가 되었든 더블룸이 되었든 함께 쓸 것은 당연한 얘기일 것이고.... 그 우스운 상황을 나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K에게 약간의 호감이 있었다는 사실은 별개로 하고, C와 K가 같은 방이라는 상황 따위도 별개로 하고, 그건 동행으로써 인정을 못 받는 행위라도 생각했기에, 나는 C와 K를 티베트 라싸에서 배웅을 했고, 나중에 꼴까타에서 만날 수 있으면 만나기로 했었다. 헤어질 때쯤 내가 그들을 보내려고 안달(?)을 했던 것에 대해 K가 내게 왜 그러는 것이냐고 따지듯이 물었었다. 그 땐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동행이 될 수 없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던 바람이 조금 성급하게 나왔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꼴까타를 못 갔다.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가면서 동행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과 함께 잘 다녔기에 중간에 꼴까타를 가기 위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위의 상황에 대해서 나는 지금까지 단 두 번 밖에 말하지 않았었다. 내 속이 좁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날까봐 입 밖에 내지 않았더랬다. 어쨌든, 그 중 한 번은 니 속이 좁다는 얘기를 들었고, 다른 한 번은 뭐 그 딴 엿같은 경우가 있냐는 말을 했더랬다. 그래서 현재까지는 1:1 스코어다. 그러나 이제는 상관없다.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다. 같은 상황이 또 닥친다고 하여도  난 또다시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잘못은 코를 곤 내가 했더라도 함께 여행 할 수는 없다. 똥 싼 놈이 성낸다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 우스운 상황을 지금도, 앞으로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우 : 인도여행의 반을 네팔에서 만난 인연들과 함께 했었다. C와 K는 함께 여행 할 수 있는 인연이 아니었기에 굳이 지금의 인연을 깨면서 꼴까타에 갈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스쳐지나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자이살메르란 곳에서 그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 둘은 함께 있었다. 스쳐지나가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인연인데... 라며 그곳에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약간 주고받고 낙타사파리를 갔다 온 후에 (전이었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그들의 방으로 초대되어 담소를 나누고 위의 식당에서 맥주 한 잔을 기울였었다.
(계속 한 방을 쓰면서도 아무 일도 없나보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여행 초보자로써 그것이 당연한 일인지, 신기한 일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고, '이런 사실이 있구나'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기로 했었다. )

그렇게 그들은 아무일도 없는듯한 동거를 계속하고 있었고, 나는 다시 찾은 인연을 살짝 맛보고는 굿바이 키스를 던졌다.

무시 : 나는 세계여행중의 거듭된 만남을 우연따위로 생각하지 않는다. 일정이나 코스가 비슷한 수많은 사람들이 떼거지로 이동을 하면 그 중에는 꼭 몇 번씩 얼굴을 맞대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는 동안에 인연이 쌓이고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이 있기 껄끄러운 상대라면 좀 난처해진다. 자이살메르에서 바이바이했던 C와 K를 우다이뿌르라는 곳에서 보게 된 것이다. (코스가 비슷하고 하루 차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둘은 작은 가게 안에서 물건 흥정을 하고 있었는데,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아는 체를 할 상황이나 사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 가게 앞을 지나쳤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서 태국 방콕.... 집에 갈 준비를 하면서 혹시 방콕의 치과중에 싼 곳이 있지는 않나 하고 찾고 있던 날이었다. 그런데 그 C와K를 방콕의 카오산로드에서 또 보게 된 것이다. C의 모습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K는 카오산로드의 길거리에서 해주는 레게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 둘은 여전히 함께 있었고, '참 둘이서 오래도 다닌다.'는 생각을 했었다. 순간적으로 본 것이었지만, 그렇게 오래동안 함께 했으면서도 그 둘 사이는 여전히 어떠한 선이 그어져 있는 듯 했고... 대단한 건지 어떤 건지, 대단한 거라면 누가 대단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이  정말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둘을 무시했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 둘 CK와의 인연은 끝을 맺게 되었다.

 ( 이 부분은 내가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무시한 것이 아니라, 같이 있기 뭐해서 살짝 피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반대의 경우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 역시 잘 모르겠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미 봤으면서 무시했을 수도 있고, 나와는 다르게 반갑게 아는체를 해주었을 수도 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의 깜냥이 그 정도였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


그리고 악연 : 여기까지는 여행중 알게 된 껄끄러운 인연에 대해 써보았다. 시간도 많이 지났고, 나도 그들을 생각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그런데 어제, 문득 사진 정리를 하다가 궁금한 것이 생겨서 티베트에 관한 것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내가 찍은 사진과 너무도 흡사한 사진을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서 보게 된 것이다. 다른 몇 개를 보니 확실하게 그 사람 C였다. (그 사진은 아마 C가 내게 그 구도를 가르쳐줘서 찍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와 나의 인연은 미안하게도 나의 코골이에서 절정을 맞아 깨졌기 때문에 그 부분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보게 되었다. (아아~, 판도라의 상자는 여자가 아니었더라도 분명 열렸을 것이다...ㅜ.ㅜ)

나에 대한 부분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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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시.

새로 도미토리에 들어온 사내가 코고는 소리에 새벽 두시쯤 잠이 깨어 잠이 오지 않는다.

아, 장애;;가 있으면 싱글룸으로 갈것이지, 왜 도미토리로 와서 피해를 주는지-_-

환자;라고 미리 이야기를 했으면 내가 다른 방으로 옮겼을텐데.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할상황이라 새벽 네시가 조금 되지 않은 시간에 샤워를 하고

조캉사원앞 바코르로 나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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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긁어왔었던 부분이다. 어제 이 부분을 긁어왔을 때는 내가 이 글을 쓸지 몰랐다. 오히려 다시는 그 블로그에 들어갈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눈 딱 감고 긁어왔던 것이다.

난 언제나 이성적이다. 그래서 종종 짜증이 난다. 어제 이 부분을 읽고 난 직후에는 더욱 그런 나의 성격이 저주스러웠다.

그냥 화를 내면 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위의 부분을 보고는,

  코를 골아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여행 중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위인가?
  코골이 수술 비용은 얼마지?
  코골이는 WHO에 장애나 병의 목록으로서 올라와 있나?

이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코골이에 대한 글로벌 스탠다드 따위를 생각하면서 나의 감정을 눌러야하지?

 C는 인터넷에다 익명성을 방패로 나에게 장애인, 병신, 환자라고 욕을 한 것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될 것을 "그 당시에 내가 그의 잠을 방해했기에 C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어."
라는 엿같은 생각이 문득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일까? 더 엿같고 좃같은 건 C가 아니라 내 자신이었는지 모른다.

내 입장에서도 아래와 같은 나만의 주장을 할 수가 있다.
내가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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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났던 그 사내는 내가 코를 고내 어쩌네 하면서 하면서 면박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나와 함께 왔던 여자한테는 인생을 알려면 인도를 봐야한다는 둥
하루종일 인도로 가자고 꼬시고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게는 시체가 옆에서 타는 것 한 번 본다고 인생의 깨달음이 순식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둥의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 수면장애;;가 있으면 싱글룸으로 가서 혼자 편하게 잘 것이지, 왜 도미토리에서 자 놓고
다른 사람 죄인 만드는지.

신경예민증환자;라고 미리 이야기를 했으면 내가 다른 방으로 옮겼을텐데.

그는 멀쩡한 사람 병신 만드는 언행을 내게 피로했지만 뭐, 여행경험이 미천한 관계로 이것이 정상인갑다.

생각하면서 방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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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이 진실한가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 글은 결코 정당한 글이 아니다.

내가 신경이 예민한 주변사람에 대해 함부러 '환자, 장애'라는 말을 하지 않듯이,
그가 주변에 있는 자신의 친구나 가족 중에 코를 골고나 이를 가는 사람에 대해, "장애, 환자"라는 말을 쓸까 생각하니 내 머리에서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어제 그의 블로그에 '타인의 욕은 공개적으로 하지 마시길....'이란 논조의 짧은 댓글을 달았기에 나 역시 같은 제한을 가해야겠다.

그를 직접 겪었던 사실과, 그의 블로그를 통해 알게된 약간의 진실을 합치니 그에 대해 좀 더 입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알아도 쓸모가 없고, 그러한 평가와 지식은 극히 개인적인 성질의 것이기에
그에 대한 평가는 내 머리에서만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C라는 사람과 나 사이에 아주 깊~은 악연의 고리가 하나 생겼음은 부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부디 살아가면서 서로 만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